문고리를 잡는다.
스윽, 초록문이 열리는 소리.
빛이 시야에 들어오고
적당한 온기의 바람이 볼을 스친다.
바람은 따뜻하고 기분 좋은 향을 머금고 있다. 부드러운 포옹으로 인사를 건네는 듯한 상냥한 바람이다.
바람은 곧이어 낯선 이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마음을 데운다. 오랜 피난 여정 뒤 안전지대를 찾은 듯한 안도가 그의 날숨에 묻어난다.
이윽고 마주한 '그린도어' 안 풍경은 황량한 사막 속 푸른 오아시스를 닮았다.
존재조차 잊고 지낸
꼭꼭 숨겨 둔
오래된 기억 속의
'나'를 열었다.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세기로
어딘가로부터
바람이 불었다.
누군가의 독백
존재를 깨우는
태초의 공기처럼
바람은 은밀하게
내 안에 들어와
부드럽게 순환하며
주문을 외우듯
편안한 음성으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의 마흔은 소란스러웠다. 영원할 것 같던 사랑이 멈췄으니까.
사랑이, 그 숱한 추억이 시든 꽃처럼 한순간 져버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행복하고 싶어 시작한 사랑이 송두리째 나의 행복을 앗아갔다.
공허로 가득찼던 '두 번째 스무살'을 추모하며
어떤 날은 거울 속 내가 측은했고 더 많은 날은 내 자신이 미웠다.
머릿속 세상은 혼탁해졌고 찢겨진 기억들에 마음이 베였다.
사랑이 나를 주저앉히고 속이고 삭혀 심장을 검게 만들었다.
사랑은 나를 채운 것 이상으로 빠져 나가, 기어이 나를 허물었다.
흔적마저 찾지 못하게 하려는 듯
매일 밤 끝 모를 터널이 펼쳐졌고
나의 일부가 가루처럼 부서져 하루하루 어디론가 떨어져 나갔다.
어두운 그 안을 헤집고 파고들다 함부로 추락해 스스로 침잠했다.
불면이 한참을 괴롭히더니 결국 나는 고장이 났다.
'어쩌다 이런 나로 흘러든 걸까.' 사랑은 증발했고, 금기로 남았다.
나의 마흔은 그렇게 안에서부터
녹아내려 지난날을 파괴하고 텅 빈 시간 속으로 나를 내던졌다.
사랑은 때로 지독한 최면을 건다.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간극을 처음부터 알았어도 멈추지 못한다.
결국 끝을 내고서야 시작이 잘못되었음을 비로소 인정하게 된다.
나에겐 첫사랑이 그랬고, 첫 결혼이 그랬다.
겁없이 운을 시험한 대가였을까.
희생을 각오한 사랑은 예기치 못한 상흔을 남겼다.
결혼을 꿈꿨던 사랑이 소멸했고,
행복을 꿈꿨던 결혼이 파국을 맞았다.
실재한 시간들이 한낱 신기루가 되어 허구로 일그러졌다.
죽지 않으려 망가진 신체 일부를 잘라 내듯이,
지난 기억의 살점들을 스스로 도려냈다.
어쨌든 살아내야 했으니까.
내가 나로부터 찢겨져 나가야 하는
참으로 기괴하고 과격한 고통이 이어졌다.
창자를 게워내는 듯한 지독한 현기증이 반복됐다.
익숙한 것들이 일순간 일렁이더니 이내 낯설어졌다.
얼굴 표정은 급속히 메말라갔고, 심장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절망, 분노, 불안, 공허 따위의 병적 결핍이 나를 집어삼키고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파괴하는 몹쓸 병을 앓아야 했다.
온통 날카로운 가시로 뒤덮인 기형적 날선 감정이
내 피를 타고 몸속 구석구석을 찌르고 또 찔렀다.
그렇게 나의 세상은 매일 밤 정전이 되었고,
칠흑처럼 어두운 무기력의 터널이 끝없이 펼쳐졌다.
이별의 본성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곁을 내어줄수록 잔혹한 발톱을 드러내려 한다.
친절한 얼굴로 다가와 집요하고 은밀하게,
감정 세포를 먹잇감으로 노린다.
이별 균에 감염된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한다.
온통 원치 않는 기분들에 사로잡혀 하루하루 생기를 잃어간다.
하나둘 생겨난 좀비 세포가 이내 세를 불려 덩어리로 자란다.
감정은 그렇게 내 것이 아닌 게 되어버려 웃음도, 눈물도 잃는다.
시선은 수시로 허공을 응시하고 표정은 무색, 무취, 무향이 되고
굳게 다문 입술가에는 마른 갈라짐이 무질서하게 피어난다.
앉은뱅이 병이라도 걸렸는지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
과거에 손발이 묶인 채 나의 세상은 그때와 지금으로만 갈린다.
'이별 전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갇혀 자신을 둘로 쪼갠다.
어느 쪽이 더 나다운지를 심판하다 결국 지금의 나를 경멸한다.
이별에 중독이 되었다면 정말 그렇게 된다.
스스로 연옥을 짓고 그 안에 자신을 가둬 죗값을 치르려 한다.
단지 이별에 감염되었을 뿐인데,
감염은 중독을 낳고 내가 나를 짓이기도록 벼랑에 내몬다.
더는 못 견딜 즈음 난데없이 기억 상실을 연기하기 시작한다.
실재한 시간들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으로 고통에 맞선다.
이별은 언제든 인간의 숨통을 끊어 낼
가공할 악마의 얼굴을 감추고 있다.
그러니 온 힘을 다해 마음 깊은 곳에 결계를 쳐야 한다.
이별이 몇 달, 몇 년을 내 안에 서성이게 해서는 안 된다.
하나의 시간의 점으로만 존재하도록 틈을 주지 말자.
서로 다른 시간대의 사랑 교차점에 이별이 찍힐 뿐이다.
이별로부터 힘껏 나아가자. 간격을 벌려 달아나자.
차디차게 끊어낼 때 이별은 나에게서 흥미를 잃는다.
이별은 사랑의 감흥을 잇는 디저트가 결코 될 수 없다.
먹어봐야 혀에 쓰고 목구멍은 타들어 가고 속은 뒤집힌다.
그럼에도 이별에 살이 닿아 여기저기 부르트고 멍이 들었다면,
인정하자. 사랑도 죽는다.
기꺼이 아프고 빨리 낫자. 환절기 감기 정도로만 아프고 털어내자.
예를 갖춰 날을 잡아 명복을 빌어주자.
치료약이 없는 괴상한 유행병에 걸려 생사를 오가는 사람마냥
끝난 사랑에 미련을 두지 말자. 딛고 나아가자.
자신을 감금하고 이별이 몸안 곳곳을 헤집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지 못할 때 이별이란 고스트에 잠식된다.
아픈 건 당연하다.
이별이 내 살을 갉아먹지 않도록 죽은 사랑의 장례를 치러주자.
사랑이 끝났다는 건 나의 일부가 뜯겨져 나간 것과 같으니까.
소멸한 나의 실존을 한껏 애도하며 상처를 씻어내자.
괜찮다, 수고했다.
생명 없이 떠도는 것들에 대한 집착은 산 자를 아프게 한다.
낫고 나면 더 건강해질 테니 지금 아픈 건 정말로 괜찮다.
그러니 사력을 다해 기필코 떨쳐 내야 한다.
남녀의 사랑은 애초에 촛불과 같아 언제든 꺼질 수 있다.
다만 누구라도 위로를 건네며 마지막 순간을 함께해주자.
영원히 타오를 수 없고 가벼운 입김에도 쉽게 흔들린다.
그 지독한 공허를 혼자 감내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사랑을 했다는 분명한 흔적이 이별이다.
이별은 새로운 사랑의 동기가 되면 그뿐이다.
다 자란 성체에게서만 발견되는 지문 같은 나이테다.
사랑은 얼마든지 새롭게 곧장 시작해도 괜찮다.
간혹 꺼내어 봐도 될 법한 몇몇의 기억은 심연에 몰래 간직하자.
다만 누군가는 도와야 한다.
그 시절 눈부셨던 한때의 나를 언젠가는 보고 싶을 테니까.
세상에는 반드시 이별 해독제가 존재해야 한다.
어디서든 치료제와 백신이 쉼 없이 만들어지고 있어야 한다.
사랑의 고약한 부작용을 온몸으로 견뎌낸 우리 모두야말로
생애 가장 나다운 '나'로서 다시 태어날 준비가 되어 있다.
사랑도 피고 지고 생로병사를 겪는다.
그러니 이별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담담하자.
이별이 빠져 나간 자리에는 굳은살이 돋는다.
새로운 사랑을 더 단단히 움켜쥘 단단한 살이 생겨난다.
이별 후 '나'를 잃어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난데없이 기억상실증을 앓아서는 안 된다.
이별로 상처받은 이들을 방치하지 말자.
감정을 누르고 눌러 생각마저 잠그곤 기억을 통째로 지워서는 안 된다.
참으로 수고했을 그들의 지난 사랑을 함께 추모하자.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무도한 형벌을 스스로에게 내리지 말자.
'혼자여서 좋겠다'와 같은 공감을 가장한
적당한 무관심은 결핍과 영혼의 허기를 들출 뿐이다.
그러다가는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꺼져가는 존재가 되고 만다.
내 안의 빛이 꺼져가는 듯한 그 과정이 얼마나 눈물나며 고통스럽고
두려움에 압도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와 같은 이들이 겪었을 그리고 겪게 될
한없이 사랑한 끝에 별안간 맞닥뜨린 끝 모를 고독과 공허의
그 기이함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한 미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구출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새로운 사랑을 향한 길을 스스로 찾아 나설 수 있도록 회복시키자.
하늘이 흐려 잠시 어두워 보일 순 있어도
세상에 빛나지 않는 별이 어디 있을까.
내 남은 생을 모두 걸게 될 이 여정이
결국은 내가 나 스스로를 구원하는 길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꽤 오랫동안.
상처에 목이 메이고 심장이 멈춘 것처럼 빛을 잠시 잃었던 언젠가의 자화상이 비단 나만의 실존이었을까.
지우고 싶고 버리고 싶고 사라지고 싶은 그 아픔. 그 절망. 그 공허... 모두가 실은 하나쯤 감추고 살지 않을까.
분명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롯이 홀로 감내하고 외롭게 앓다 겨우 나아 덜 아문 채로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숱한 영혼들.
어딘가 꼭, 누구든 꼭, 언제든 꼭 치유의 공간이, 조력자가, 새로운 시작점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그래야 이야기가 되는 거라고.
그래서 직접 해법을 찾고 싶었다.
이별을 앓고 있는 누구라도 찾아와 '상처 없는 회복'을 누릴 수 있는 시공간.
그저 한 걸음만 안으로 내디디면 되는 곳. 이별을 닫고 나를 여는 치유의 문 '그린도어'.
한때 나와 같았던, 잠시 길 잃은 별들을 위해.
내가 나를 지우고 지워내 단백질 액체가 되어 더 이상 이전의 나로서 존재하지 않게 되는 태초에 프로그램된 우화(羽化).
이별의 풍랑이 거칠고 괴기할수록 번데기에서 생존한 우리는 더욱더 아름다운 성체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
이별은 누구에게나 마음의 상처로 남는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과 이별은 그저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이니 진심을 다해 '괜찮다' 다독여줘도
여전히 누군가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고통에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겪고 있다.
때로 그들 중에는 자기자신의 존엄을 부정하고, 분노에 영혼을 팔아 참혹한 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런데 그 가공할 이별의 과정을 잘만 이겨낼 수 있다면,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외내형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빠르게 회복할 수만 있다면,
가장 어두운 순간이야말로 가장 밝은 빛을 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더욱 단단히 붙들고 생애 가장 빛나는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생의 의지를 다지며 더더욱 단단한 내면으로 무장할 수 있다.
이별의 아픔을 지나온 이들이 다시 삶을 마주하고,
자신을 더 깊이 사랑하며, 더 좋은 사랑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이후 또다시 이별을 겪더라도 결국에는 사랑을 이어가고, 언젠가 결혼이라는 선택 앞에 설 수 있도록
당신을 바로 세우는 가장 따뜻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이러한 동행 치유의 여정은 지난날의 상처 입은 내가 너무나 간절히 바랐던 것이었기에,
그 누구보다 진심을 다해 잘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린도어 GREEN DOOR
이별을 닫고, 나를 여는 치유의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