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은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by 여목_ 2022. 6. 19.
반응형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이것은 저자 룰루 밀러의 이야기다. 그녀가 흠모하고 집요하게 조사하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꽃이나 식물을 본능적으로 분류하(는 것을 좋아하)거나 삶을 바쳐가며 물고기를 잡아 분류하고 표본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책 내용의 절반을 할애해도, 이 책의 주인공은 룰루밀러가 맞다. 이 책이 서점에서 자연과학이나 생명과학으로 분류되어 있어도 본질은 에세이다.  

이 책에서 룰루 밀러는 어떻게 그토록 처절한 절망 상황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숱한 좌절과 번뇌를 겪을만했던 인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어떻게 그 삶을 이어나갔는지 조사를 시작한다. 어쩌면 그녀와 많이 닮았으며 많은 면에서 놀라운 업적을 만들어낸 데이비드의 내적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온 수천가지의 물고기 표본을 한 번은 화재로, 한 번은 대 지진으로 모두 소실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것을 즉시 구축해 나갔다.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밀러는 그의 자서전부터 그가 남긴 모든 자료와 노트, 메모들을 찾아 그 본심이 무엇인지 밝혀내려 깊이 파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녀의 지적 호기심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탈출구를 찾은 것이었다.  

이야기는 데이비드의 일대기와 밀러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섞여있다. 그러면서도 개연성이 있어 동기나 목적이 충분히 잘 섞여있다.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마치 영화를 보듯 단숨에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중간부터 너무나 대단한 반전이 시작된다. 이야기는 물고기 표본을 수집하던 데이비드의 이야기에서 전혀 다른 곳으로 튕겨져 나간다. 그리고 그 대단한 반전은 사람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꼭 책으로 읽어야만 한다. 이것은 미국의 20세기 치부까지 건드린다. 그리고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인터뷰로 등장한다. 그렇게 그녀는 무질서했고 파괴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은 자신의 삶에서 서서히 질서를 발견하고 하나씩 다시 구축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니 이것은 과학 에세이가 아니라 룰루 밀러의 삶에 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삶의 고민과 어려움은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다분히 철학적이라거나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분류학적인 논리를 따라갈 때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사실 그렇지 않을수도 있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엉망일수도 있지만, 다른면으로는 새로운 발견이 될 수 있고 숨어있는 삶의 질서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되는 것이다.   

댓글